듣고싶은 말을 해줄 수 있다면

2018. 4. 10. 09:57마인드/말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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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크기의 말 그릇을 지닌 사람들을 만난다.



"회사 다니는게 힘들어요. 제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요즘 같으면 딱 그만두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 그만두기도 겁이 나요."


예전의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말들은 너무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야 ! 나는 이것보다 더 했어. 적성은 무슨, 먹고 살려고 하는거지. 요즘 애들은 아주 배가 불렀다니까." 하고 빈정거렸다. 또 누군가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3년만 더 버텨. 내 말 들어, 후회 안 할 테니!"라며 더 이상 말도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두드린 말은 "그래, 적성에 안 맞아서 일한 맛이 안 났겠구나. 힘들었겠어"라는 공감의 말이었다. 그 말 속에는 편견이 없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니 자연스럽게 더 깊은 얘기를 할 용기가 생겼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반복된다.


"둘째를 가져야 할지 고민이에요. 더 낳자니 일과 병행할 자신이 없고, 하나만 키우자니 첫째가 외로울까봐 걱적되고."


이때도 돌아오는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그냥 하나만 키워. 뭐하려고 둘씩이나 낳아. 일하는 엄마에게 둘은 힘들어. 아주 죽어난다고"

"에이, 무조건 둘이지. 혼자는 안돼. 내가 해봐서 알아. 당장은 힘들어도 둘 키우면 나중에 더 좋아. 더 늦기 전에 얼른 낳아."


하지만 이렇게 말해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둘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야?"





정해진 대답 대신 오히려 내게 질문을 던졌다. 먼저 가본 길인데도 아는 척하며 나서지 않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 조언해준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들의 말일 때가 많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대답을 함께 찾아보는 대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리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검토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때까지 따뜻하고 세밀한 기술로 배려해준 사람을 만났을 때 힘을 얻는다.


커피 받침에는 고깃국을 담을 수 없다. 깊이가 없는 그릇 안에 진한 맛을 내는 말을 담아두기는 어렵다. '말솜씨'는 여전히 탐나는 능력이지만, 나이가 들고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이 있는 말이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말로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기 전에, 말 그릇 속에 사람을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말그릇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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