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이 큰 사람

2018. 3. 28. 11:34마인드/말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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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위의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면 소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 그녀가 당신의 아이거나 동생이라면 어떤 말을 해줄 것인가 ?


이 질문은 1980년대 초반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Berlin Wisdom Project)'라는 흥미로운 실험에 처음 등장했다. 연구원들은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위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곧이어 대답이 크게 둘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안돼. 안돼. 열다섯 살에 결혼이라니, 미친 짓이지."


"쉬운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아. 열다섯 살에 결혼한다는건 누구나 반대할 거야, 하지만 특수한 경우라는게 있으니까. 예를 들어 그녀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 아니며 부모 친척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면 ? 혹은 일찍 결혼하는 문화권에 사는 소녀일 수도 있지. 무엇보다 우리는 충고하기 전에 먼저 그녀와 대화를 나눠봐야 해. 그래서 그녀의 상황과 감정과 마음에 대해 알아봐야 해."


이 연구는 『무엇이 그들을 지혜롭게 했을까』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 앞에서도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 고정된 관점을 고집하는 대신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일 줄 아는 것 등이 바로 현명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 다양성을 고려하며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일컫어 '말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부른다.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 넉넉한 사람 말이다. 그릇이 좁고 얕은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시픙ㄴ 대로 말을 쏟아내지만 그릇이 없고 깊은 사람은 상황과 사람, 심지어 그 상황과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말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살면서 만들어진 말 그릇의 차이 때문이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작은 말 그릇 


 큰 말 그릇 


- 말을 담을 공간이 없다.

- 말이 쉽게 흘러넘친다.

-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

-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다.

- 담은 말이 쉽게 새어나가지 않는다.

-  필요한 말을 골라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품만큼 말을 채운다.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공간이 충분해서 다름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받아들인다. 조급하거나 야박하게 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너는 모르겠지만', '내 말 좀 들어봐' 하며 상대의 말을 자르고 껴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구나', '더 말해봐', '네 생각은 어때' 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더 열게 만든다.


말하기  실력이 부족해서 무조건 듣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래, 너는 떠들어라' 식의 무시하기도 아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름'과'특별함'을 이해하고 있기에, 말 자체를 평가하거나 상대반의 말하기 실력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의 불안함을 낮추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그릇이 큰 사람과 대화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말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말과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무리 날카로운 말로 자신의 마음을 쑤셔대도 그것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의심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비난하거나 원망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너는 말로써 내 모습에 상처를 낼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 말과 진심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궁극적으로 말은 수단이지 본질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분노에 휩쓸려 매항하지도 않고, 설령 말에 넘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순간의 감정을 조절 할 줄 안다. 상대방에게 쉽게 충고하지도 않는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말보다 더 중요한 것들,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상대방의 감정과 배경과 메시지들을 찾아낸다. 마음속에 채워진 말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구역별로 정리가 잘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일에 바르르 끓어 넘치지 않는다.


한 번 들어온 말들을 쉽게 흘리지도 않는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너만  알고 있어'와 같은 가벼운 약속은 하지 않는다. 말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딱 필요한 순간에, 곽 찬 말이 나온다. 그것은 세련된 말과는 다르다. 기교가 아니라기세에 가깝다.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결코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끌리는 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반대로 말 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조급하고 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차분하게 듣질 못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만 말 그릇을 꽉 채운다.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고, 과장된 말을 사용하고, 두루뭉술한 말 속에 의중을 숨긴다. 그래서 화려하고 세련된 말좀씨에 끌렸던 사람들도 대화가 길어질수록 공허함을 느끼며 돌아선다.


특히 말 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평가하고 비난하기를 습관처럼 사용한다. '객관적으로 말이야' , '다 그렇게 생각해' 와 같은 말로 자신의 의견을 포장하지만 사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언제나 자신에게 둔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대한 평가와 비난은 참아내질 못한다. 몇 자 듣지도 못하고 '그만 좀 해. 나도 힘들어', '너 때문에 그런거야'와 같은 말로 다시 남 탓을 하면서 책임을 피하려 든다. 상배당의 말에 쉽게 출렁이고 넘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보듬어주지 못할 뿐더러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거나 때론 먼저 상처를 준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 상황, 입장만 설명하고 이해 받으려고 한다.


상대방의 말 속에서 '본심'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질 않는다. 사람을 위해 말하기보다 말을 하기 위해 사람을 불러 모을 뿐이다.


말에 힘이 없으니 힘이 생길 때까지 생떼를 쓴다. 말이 격해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된 대화라고 해도 실제로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라고 생각한다. 말 그릇이 부족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 말 그릇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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